문화데이: 영원한 나르시스트, 천경자 전시
'꽃과 여인의 화가'로 불리는 천경자 화백의 전시관이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소문 본관에 다녀왔습니다.
천경자 화백은 한국화의 채색화 분야에서 독창적 화풍을 개척한 화가로 1960~1980년대에 활발하게 활동하였으며, 그 대중적 인기 또한 높았다고 합니다.
꽃과 여인을 주된 소재로 하여 '꽃과 여인의 화가'라고 불렸고, 꿈과 정한을 일관된 주제로 작품활동을 하였습니다.
작품 속 특유의 고독하고 몽환적이며 애틋한 눈빛의 여인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화려한 색채와 독특한 구성으로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표출하였습니다.
서울시립미술관의 천경자 관은 지난 2014년 12년 만에 작품이 교체되었다고 하는데요. 특히 대부분의 작품들이 대표작급의 수작들로 초기작인 1951년작 '생태' 부터 자화상인 1977년작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 해외여행지에서 본 이국적인 여인들의 모습을 그린 1989년작 '자마이카의 여인곡예사'등이 포함되어있습니다.
제가 인상깊게 보았던 그림 역시 그녀의 대표작인 '생태'와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라는 작품이었는데요.
먼저 천경자 화백을 화가로써 성공하게 만든 1951년작 '생태(生態)'는 뱀 서른다섯 마리가 엉켜 있는 독특하고도 강렬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자극적이고 도발적인 소재와 구도로 화제를 일으켰고, 이로 인해 화백은 일약 스타작가로 떠올랐다고 하죠.
그녀가 이 그림을 그리던 시기는 장래가 촉망되는 여류화가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집안의 몰락, 아끼던 동생의 죽음, 결혼 실패와 재혼을 겪으며 삶의 굴곡을 겪던 때라고 합니다.
무섭고 징그러워 뱀을 너무나도 그리고 싶지 않았으나, 살아가는 것이 너무도 고통스러워 그것을 잊기 위해 뱀을 그렸다고 하는데요. 원래 33마리의 뱀이 있었지만 사랑했던 남자의 나이와 뱀의 머릿 수를 맞추기 위해 2마리를 더 그려 넣었다고 합니다.
다음으로 천경자 화백의 자화상인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도 인상 깊었는데요. 좀처럼 감정을 알 수 없는 표정과 꿈을 꾸는 듯한 여인들의 모습을 담은 천경자 화백의 작품들은 제게 있어 모딜리아니의 작품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22살이 되던 그 해 그녀는 첫 번째 연인을 만나 첫 딸을 낳았다고 합니다. 많은 변화가 있던 시기인 만큼 그림 속 작가의 얼굴에는 알 수 없는 우울하고도 우수에 짙은 감정이 서려있는데요. 저에게는 정면을 똑바로 응시하는 눈빛은 오히려 삶에 대한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는 듯 느껴졌습니다.
이 작품 역시 머리에 4마리의 뱀이 있는데요. 4마리의 뱀은 불행한 결혼 생활 속에서 어렵게 네 명의 자녀들을 부양해야 했던 자신의 처지가 담겨져 있다고 합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채색화가로 유명한 천경자의 색다른 모습을 조명할 수 있는 '드로잉' 섹션도 마련되어 있으며, '자유로운 여자' 섹션에서는 그림뿐만 아니라 글재주로도 유명했던 화백의 출판물과 발췌된 책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도 치열하게 살아왔던 천경자 화백의 아름다운 그림들을 만나볼 수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영원한 나르시스트, 천경자' 전시 추천합니다.
"바람은 불어도 좋다.
어차피 부는 바람이다.
어디서 일어,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바람들
그 위에 인생이 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