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데이 : 가야본성 加耶本性
안녕하세요. 2019년 마지막 날.
오늘은 국립중앙박물관_ 가야본성(加耶本性) 칼劒과 현絃 _ GAYA Spirit-Iron and Tune전시회에 다녀왔습니다.
지하철 4호선, 경의중앙선 환승역인 이촌역 2번출구를 내리면 지하도로 국립중앙박물관까지 연결이 된다는 점 아시져?
개인적으로 역사, 특히 한국 고대사에 관심이 많은지라, 오늘 전시회를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국사시간에 배웠던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 기억하나요?
그런데 500년 이상 역사를 가졌던 가야는 삼국시대에 편입되지 못하고 스쳐 지나간 망국의 기록으로만 남았습니다.
교과서에서만 접했던 가야는 제 기억에 경상남도 서편에 자리잡은 작은 약소국 정도로만 인식되었는데요.
과연 오늘 전시회에서 저는 가야의 어떤 면을 보았을까요?
오늘은 운이 참 좋았던 것 같아요.
오늘까지 3일간 전시회가 무료 개방이네요 ㅎㅎ
프롤로그 | 신화에서 역사로
‘가야’하면 수로(首露)를 떠올립니다. 수로가 가야를 세운 과정은 신화로 남아있습니다. 42년 3월, 수로는 나라 이름도 없고 신분질서도 뚜렷하지 않았던 남해안의 바닷가에서 나라를 세우고,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과 혼인을 합니다. 비록 신화이지만 가야의 시작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봅니다.
전시회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눈을 사로잡은 돌탑. 그리고 영상이 한 편의 대하서사시처럼 영상으로 노출되었습니다.
가야의 수로임금. 그의 부인 허황후(본명이 허황옥이라는걸 저는 오늘 알았습니다.)의 만남이 돌탑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사진에서 보이는 돌탑. 저 돌탑은 허황옥이 인도 아유타국에서부터 배에 싣고 왔다고 하네요.
참고로 돌탑의 재료인 돌은 우리나라에는 없는 광물질로 구성되었다고 하니... 인도 아유타국에서 온게 분명하지요.
상상속의 역사로만 인식했던 가야사가 실존했던 이야기라니....
실로 대단합니다.
1부 공존
가야는 가락국(금관가야), 아라국(아라가야), 가라국(대가야), 고자국(소가야), 비사벌국(비화가야), 다라국 등 여러나라가 공존하였습니다. 가야가 누린 공존의 가치는 비록 통합의 힘에 눌려 사라졌지만 오늘날에 이르러 새롭게 인식되고 있습니다.
가야는 위의 사진에서 보는 것 처럼 영역이 대단히 넓습니다.
경남 고령, 고성, 거제, 김해, 함양군을 비롯하여 전남 순천, 남원, 장수군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차지했었네요.
으례히 전라도는 백제 영역이라고 알았는데... 오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2부 화합
5세기 한반도는 삼국이 팽팽하게 대치하면서 힘의 균형이 작용하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이 때 가라국(대가야)은 여러 지역을 규합했으며, 479년에는 중국의 남제(南齊)에 사신을 파견하여 '보국장군본국왕'을 제수 받아 국제적 위상을 새롭게 정립했습니다. 가실왕은 가야금 12곡을 지어서 여러 가야의 화합을 도모하였습니다.
지금까지 본 어느 전시회보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유물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3부 힘
가야가 520년간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은 힘을 가졌기 때문이니다. 가야의 힘은 무엇보다 철에 있었습니다. 철은 당시 최고의 첨단 소재였기 때문입니다. 첨단 기술은 예나 지금이나 군사 무기에 가장 먼저 쓰입니다.
가야 특유의 철갑옷. 역사시간에 사진으로 보았던 기억이 나네요.
편편한 철판 여러겹을 가죽끈으로 엮어 만든 형태인데... 아쉽게도 광개토대왕의 공세에 무기력하게 무너지고 말았지요.
제 기억으로는 고구려 개마무사들이 입던 철갑옷보다 방어력이 약해서 쉽게 관통당했다고 합니다.
실제 가야왕의 고분 사이즈에 맞춰서 조성한 왕릉 안 모습을 재현하였다고 하는데
그 넓이가 어마어마하게 넓었고, 유물도 많았습니다.
그 시기 가야의 국력은 신라, 백제와 맞설만큼 거대하였던 것 같습니다.
다만 그 왕릉에는 최소 50명의 순장자들이 함께 묻혔다고 하는데...
순장자는 늙은 사람부터 어린아이, 10대 청소년까지 두루 포함되어 있었다고 하네요.
생각만해도 참 끔찍한... 순장의 풍습...
전시관 중앙 복도 양쪽에 포진한 가야 시대 갑옷들.
잘 보면 갑옷은 비슷한 형태이나, 투구는 각각 다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시장 중간에는 말을 탄 가야 장군과 병사들의 전투 모습이 재현되어 있습니다.
무대 뒤에는 아름답기까지 한 전투 영상이 생생한 음향과 함께 보여지는데...
잠시 앉아서 그 생생한 음향에 푹 빠져 들었습니다.
4부 번영
가야는 한 번도 번영한 적이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4세기 이전 가락국(구야국)은 철과 여러 특산품이 모이는 당대 최고의 국제시장으로 번영을 누렸습니다. 하지만 가락국은 왜 통합보다는 공존을 추구했을까요?
가야시대 유물 중 가장 빼어난 뿔잔입니다. 국사 교과서에서 보았던 것과 동일합니다.
힘쎈 국력으로 가야는 번창하면서, 빼어난 유물을 어마어마하게 제작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가야는 철기 문화가 뛰어나서, 이미 그 이전부터 중국 남제, 백제, 신라, 왜와 교역을 활발하게 해 왔다고 합니다.
그 당시 국력은 바로 철을 얼마나 잘 다루냐에 따라 힘의 서열이 정해졌을테니까요.
* 디아스포라Diaspora팔레스타인을 떠나 살면서 유대교의 규범과 생활 관습을 유지하는 유대인
에필로그
가야의 여러 나라들은 저 마다의 자연발생적 조건들을 존중하면서 520여년을 이웃으로 공존해 왔습니다. 가야는 강자의 패권으로 전체를 통합하지 않았고, 언어와 문화의 바탕을 공유하면서 각국의 개별성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가야가 역사속에서 존재하는 방식이었고, 멸망의 원인이었습니다. 가야는 중앙집권체제를 갖추었던 신라에 병합되어서 민족사로 편입되었습니다. 가야의 운명은 국가란 무엇이고 평화란 무엇인지에 대하여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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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 가야.... 강원도 동해시에서 가야 유적이 발견되었습니다.
나라가 지도상에서 사라졌음에도 가야인들은 200km나 떨어진 강원도 이름 모를 지역에서 자신의 모국인 가야의 풍습을 지키며 살아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륵이 타서 유명한 가야금이... 가야 국명에서 따온 악기라는 것도 저는 처음 알았습니다.
설명에서처럼 신라금이 아닌 가야금으로 역사에 남아있는 우리의 가야.
오늘 전시회는 정말 가슴에 잔잔한 물결이 일어날 정도로 뜻 깊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기대 이상으로 볼 것이 많았던 가야본성 전시회.
왜 이렇게 훌륭한 전시회를 많은 사람들이 관람하지 못할까 아쉬울 따름입니다.
제가 2시간 정도 전시관에서 시간을 보냈는데.. 정말 국내 최고의 전시회 중 하나라고 손 꼽을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나중에 전시회장 출구에서 본 안내판에는 국내 대부분의 유명 대학교 박물관이 함께 참여하였다고 합니다.
시간이 되신다면.. 다들 한번 꼭 보셨으면 합니다.